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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기다림 - 7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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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는 소녀 / 폴 토마 / 19세기 추정
 

 
기다림

없는 발자국 소리도
크게 들리네요.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문득 소식이라도 들을까
귀 기울이면 쑥스럽고요.

책이니 악기니 커핏잔
실없이 쳐다보네요.

바람은 줄지어 불고
구름은 뭉게뭉게 흘러갑니다.

어디쯤일까 어디쯤일까
그대 있을 만한 거리를
헤아리다보면,

그대가 서둘러 온다고 해도
오히려 내가 떠날 때가 되네요.


 
 
지금의 세상은 기다리는 일이 소멸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매체는 초나 분 단위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소환합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나와 상대방이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하지요.
버스나 지하철 심지어 도로를 걸어가는 중이라도 '카톡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듣는지요.
이 소리는 ‘기다릴 수 없어’, ‘네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해’라는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기다림은 너와 나 사이의 공간과 시간의 사이에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이 시간과 공간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즈 세상이 된 거지요.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나려고만 한다면 통화나 화상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세상에 시공간이 없으니 기다림은 자동적으로 소멸하지요.

약속 장소에 나가 친구를 기다린 적이 있었지요.
친구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좀 그랬지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 '내가 이렇게 기다려 본 적이 참 오래됐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일은 삼삼하게 재미있었습니다.

기다림은 돌아올 사람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기다리는 일도 즐길 수 있지요.
기다림을 통해서 올 사람에 대한 갖가지의 행복한 상상도 할 수 있습니다.

올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면 긴장이 배가 됩니다.
그러니 발자국 소리도 그 사람의 흔적도 예삿일이 아니게 느껴집니다.
기다리면서도 안 기다리는 척 내숭도 떨어보고,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했으니
약속한 사람이 오면 나는 토라져 갈 수도 있다고 협박(?)도 해 본답니다.

이게 바로 기다림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출처 : 오늘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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